정동영 “협치를 말하면 수박? 이재명 정치가 협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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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4-08-27 09:30본문
[주간경향] 일극 체제가 아니라 초극(超克) 체제다. 주간경향이 만난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지난 8월 18일 새로 선출된 민주당 지도부체제가 이재명·친명 일극 체제의 완성이라는 평가에 대한 반론이다. 정 의원은 MBC 기자를 하다 1996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통일부 장관과 여당 대통령 후보, 당 상임고문, 대표를 지냈고 낙선해 원외 경험도 했다. 말하자면 한국 정치의 최정상부에서 맨 밑바닥까지 두루두루 경험을 한 5선 국회의원이다. 새로 지도부를 선출한 여야 정치권에 그는 어떤 조언을 할까. 지난 8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했다.
-22대 국회가 출범한 뒤 국회에서 특검이 발의되면 여당의 필리버스터와 야당 투표에 의한 중단,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다시 국회 표결 부결이라는 ‘무한루프’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는 해소될까.
쉽지 않긴 하다. 어쨌든 핵심은 정치의 실종이었다. 정치는 절멸의 게임이 아니다. 그건 전쟁이다. 정치는 전쟁과 다르다. 전쟁은 상대방을 절멸하는 것이고, 정치라는 건 구동존이(求同存異), 그러니까 내 지지 세력은 넓히고 내 반대편, 나와 다른 사람은 공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은(지난 8월 19일 국무회의에서) 좌파척결을 이야기하며 섬멸을 말했다.
-윤 대통령은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 같다.
섬멸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경쟁이다. 국민의 삶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고, 정권 획득이 정당의 목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모두 정권 획득이 목표인데 이제 두 사람이 무대에 올라온 것이다. 저쪽에서 한 대표가 대선후보가 될 확률이 현재 시점에서는 제일 높고, 이쪽은 이 대표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윤석열·이재명 구도와는 좀 달라졌다. 윤 대통령은 섬멸·좌파척결을 주장하고 이재명 대표로서는 상대가 정적 죽이기를 하는 것에 맞서는, 그런 살벌한 국면의 전환은 기대할 수 있다. 금융투자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제3자 특검 등을 매개로 대화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국민연금 문제도 그렇다. 총선 직전에 여야가 주장하는 소득대체율이 1%포인트 차이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 미래에 관한 주요 의제인데 정치가 작동하지 못하고 발로 차버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새로 선출한 여야 대표가 대화하려는 의지라도 보이니 제한적이나마 정치의 복원을 기대해보는 거다.
-만나서 대화하는 것 자체만 하더라도 의미가 있다는 말로 들린다.
2004년 총선 직후의 일이니 딱 20년 만이다. 그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열린우리당 대표였던 내가 5월 3일 ‘5·3 새정치 협약’이란 걸 맺었다. 물리적인 대치,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하는 ‘무한루프’를 반복하는 걸 막자는 데 합의했다. 협약의 핵심 중 하나가 국가보안법 문제였다. 국가보안법도 절충해서 가자, 전부 아니면 전무가 아닌 가운데 지점을 찾아보자, 물리적 충돌, ‘동물국회’에서 벗어나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4대 개혁 입법 과제로 제시하면서 비타협적 입장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이 어느 정도 받겠다는 선이 있었는데 그때 못 바꾼 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당시 강성 인사들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전면폐지를 내걸고 단식투쟁을 벌였다. 박근혜 대표와 그 협약을 한 뒤 나는 당에서 벗어나 있었다. 통일부 장관을 맡게 되면서 직접 개입할 수 없었다. 아쉬운 대목이다. 사실 불고지죄를 포함해 국가보안법 제7조 등 독소조항을 걷어내고 대체 입법으로 가는 등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만 걷어냈어도 지금은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을 텐데, 그런 교조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 발상이 유감스럽다.
-그게 이번 민주당 전국당원대회의 평가와 연결되는 지점 아닌가. 이재명 대표와 친명 지도부라는 일극 체제가 완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동훈은 당내 친윤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립된 섬, 외인부대라는 평가가 나오고.
일극 체제라… 나도 그 말을 듣고 곱씹어 생각해봤다. 나는 일극이라기보다 초극(超克) 체제가 맞는 것 같다. 어려움을 넘어서 극복한다는 뜻의 초극. 지금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을 보면 어떤 열패감이 있다. 어떻게 이런 정권이 나왔나, 혹은 만들어줬냐 하는. 또 하나는 위기감이다. 어떻게든 이재명을 제거하겠다는 살의다. 실제 칼에 찔리기까지 하지 않았나. 그런 비상한 위기감이다. 정권을 내준 열패감이, 그냥 정권을 내준 것이 아니라 그 정권이 극우 정권이라는 이 경악할 만한 상황과 거기서 느끼는 비상한 위기감, 이 상황을 넘어서야 한다는 그런 감성과 이성의 명령이라고 본다. 감성적이든 이성적이든 이재명 대표는 지금 DJ(김대중)를 능가하는 서사와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이다.
-올해 초 부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그런 것들을 말하는 건가.
DJ의 삶과 집권은 당시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고, 그 결과 우리 정치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그것처럼 말한다면 이재명은 21세기의 DJ다. DJ는 1997년, 20세기 말에 대통령이 됐는데 비교해보면 나는 2007년(정 의원이 출마했던 2007년 대통령선거)에 시대정신을 대표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 그리고 내 삶은 프티 부르주아(중산계급) 같은 삶이라고나 할까. 나도 고생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교육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고, 물론 유신체제에 저항해 끌려간 젊은 날의 고뇌와 고통은 있었지만, 그다음엔 남들이 보기엔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거기서 이름을 날리고 편하게 정치에 입문했다. 대중의 그 엄혹한 삶을 대변하기엔 나에게는 스토리가 부족했던 거다.
-그렇다면 2007년 인스타 팔로워 구매 대선에서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대정신을 대변한 거라고 할 수 있나.
그건 또 별론으로 봐야 한다. 이명박은 시대정신이 아니라 ‘부자 되세요’였다.
-이재명 대표는 시대정신을 대변하나.
이 대표는 DJ를 능가하는 서사와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 대표를 도구로 해서 대중은 무엇을 원하나. 대중은 벽을 느낀다. 우리가 신분제 사회가 아닌데 어느덧 돈이 곧 신분인 신분제 사회가 됐다. 그리고 사다리가 치워졌다. 딱딱하게 굳어가는 경화 사회다. 어떻게든 여기에 숨구멍을 내고 사회가 말랑말랑해서 사회적 이동성·유연성을 복원하길 원한다. 이 대표의 삶만큼 그런 시대적 과제를 그 자체가 대변하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열광한다고 본다. 반대편에서는 그래서 죽이려는 것이고. 자기들도 본능적으로 살려둬선 안 된다는 걸 알아서 제거하려 한다. 그런 경쟁력을 갖춘 삶의 내용과 또 본인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하면서 보여줬다. 이재명 정부가 집권하면 이런 길을 가겠다고 미리 예시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저쪽에서도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이재명을 죽이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걸 일극 체제라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 편향되고 편파적인 시각이다. 1기 때 이 대표 지지율이 70%대였는데 85%로 더 늘어난 것은 DJ보다 인스타 팔로워 구매 더 지지받은 것이다. DJ도 85% 지지로 총재가 되진 않았다. 그 이유는 뭘까. 그게 아까 말한 열패감, 위기감 그리고 비상한 시기라는 것이다. 그게 합쳐져 나온 이 대표 체제를 뭐라 불러야 할까를 생각하면 나는 초극 체제가 맞다고 본다.
-아마 그런 이야기를 하면 따라 나오는 것이 사법리스크일 것이다. 선거법 위반·위증 교사 재판 1심 결과가 오는 10월 중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대선을 앞둔 1997년 10월 DJ 600억 비자금 의혹 사건이 불거졌다. 그때 대통령이었던 YS(김영삼)가 명언을 남겼다. 보고를 받고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 것이지 검사 놈들이 뽑는 것이 아니야’라고. 그 한마디를 하자 당시 검찰총장이 수사 유예를 해 대선 뒤로 넘겼다. YS가 정곡을 찌른 것이다. 대선 한 달을 앞두고 수사로 분탕질을 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되나. 그런 점에서 판사나 검사가 대통령을 결정하거나 하게 해서는 안 되는 거다.
-이재명 대표는 정 의원의 팬클럽, ‘정통(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공동대표로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2002년 대선 당시 ‘후단협’이라는 것이 나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던 노무현을 흔들었다. 나는 부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검은 비닐봉지에 든 돼지저금통을 나눠주며, 또 자갈치 시장을 돌며 ‘노무현, 부탁합니다’ 하고 선거운동을 하고 다녔다. 그때 진심으로 도왔다며 노사모 핵심들이 정통으로 온 것이다. 그 과정에 당시 성남에서 시민운동을 한 이재명 변호사가 참여한 것이다. 2005년쯤으로 기억하는데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당시 이재명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코드가 맞았다. 당시 정통 멤버들 중에서는 법률가이자 시민운동가로 돋보이는 존재였다. 그래서 추대해 대표를 맡게 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와는 동지적 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2007년 대선에 실패해서 사실은 큰 도움을 못 줬다. 그 뒤 2008년 이 대표는 성남시장 출마했다가 떨어졌고, 2010년엔 기적처럼 성남시장이 됐는데 그때는 정세균 대표가 좀 도왔던 것으로 안다.
-이번 당대표, 최고위원 선거 과정에서 정봉주 후보가 초반 1위를 달리다가 막판에 낙선한 건 어떻게 생각하나.
선거 과정에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판단 미스로, 국민 정서와 당의 정서를 읽지 못한 실수로 보인다. 안타깝다. 나에게는 아픈 손가락 같은 사람이다.
-2007년 선거 때 BBK 실소유자 의혹을 제기한 거로 감옥 간 것 때문에?
BBK 문제에 선봉에 섰다가 감옥에 간 건 결국 내가 져야 했던 짐을 정봉주가 지고 갔으니까. 홍성교도소에 여러 번 찾아가긴 했지만 미안하다. 빚이 있는 것이다. 지난 총선 때 강북 공천장 반납하게 된 것도 정말 안타까웠다. 정봉주는 2004년에 초선하고, 2007년 일로 감옥 간 뒤 거의 18년을 정치 낭인으로 보냈다. <나꼼수>도 하면서 이름은 냈지만, 여의도 국회에서는 내쫓긴 상태였다. 이번에도 처음엔 1등 하는 것 같더니 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걸 보고 인간적으로 굉장히 안타까웠다.
-정봉주 후보는 막판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명팔이’, 이재명을 팔아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나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건 실수 맞다. 당원과 국민을 대변한다고 나섰다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걸 짚어야 했다. 아까 이야기한 초극 체제에서 당원들은 이 대표를 중심으로 견고하게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그다음에 정권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의지가 충만하고 불타고 있는데 그건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의제설정 포인트를 잘못 잡은 실수다. 내가 옆에 있었으면 인스타 팔로워 구매 조언을 해줬을 텐데.
-정봉주를 정 의원이 도왔다는 정치권 소문이 있었다.
나도 안다. 정봉주를 싫어하고, 나도 싫어하는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실제로 정봉주를 돕거나 하진 않았나.
심정적으로만 도왔다. 이 대표가 또 김민석 최고위원을 원했으니 민주당 당원들은 정봉주도 찍고 김민석도 찍었을 것이다.
-민주당이 포퓰리즘 독재 정당으로 변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과정을 문제 삼기도 한다.
팬덤은 한국 정치의 특징이다. 2017년 민주당에서 돈을 내는 당원이 20만명이었는데 이제 125만명이다. 100만명이 늘었다. 7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촛불혁명이 있었다. 1700만 촛불이 당으로 들어와 정치적 효능감을 맛본 것이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자는 열망이 민주당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정당으로 들어와 정당의 의사결정에 참여한 것이다. 거기서 파생된 것이 팬덤인데 그 출발은 ‘노사모’다.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뭐든지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지만 당원과 국민은 관객이 아니다. 검찰권도 주인은 국민인데 지금 검사들이 자기 것인 양하고 있지 않나. 나는 그게 정동영 정치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당원 주권주의를 주장하는 분들은 정 의원이 서두에 언급한 협치에 대해 적대적인 발언을 많이 한다. 협치를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수박이다, 이런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부작용으로 본다. 그건 옳지 않다. 왜냐면 정치의 본령은 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하는 대화다. 대화로 하는 것이 협상이다. 100%는 없다. 나도 양보하고 상대방도 입장을 뒤로 물려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이 정치의 바람직한 모습이고, 우리가 가야 할 합의제 민주주의의 길이다. 대치와 대결, 반목과 혐오가 아니라 상호존중과 타협의 정치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이재명·한동훈 신임대표가 그런 대화나 협의, 협치의 모습을 보일까.
한동훈 대표는 정치 경험이 없다. 정치 멘토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학습해서 배우는 것과 경험으로 배우는 건 다르다. 나도 쭉 경험했지만 정치에서 성공이나 실패의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다. 소크라테스가 한 유명한 말인데 ‘내가 모른다는 것은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게 참 ‘지(智)’다. 한동훈에게 그게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재명 대표는 협상을 잘할 것 같은가.
이 대표는 실용주의자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해법에 늘 초점을 두는 정치가라서 주고받기가 가능한 정치를 한다고 본다. 대표적인 예가 남한산성 계곡에서 수천 수백 불법 노점상을 정리해낸 일이다. 아무도 해낼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그걸 일방적으로 경찰 동원해서 밀어낸 것이 아니지 않나.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을 받아내는, 그것도 하나의 협치 모델 아니었나 싶다. 결과적으로 큰 불상사나 불협화음 없이 그 문제를 해결해낸 것을 이미 봤지 않나.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될까.
본인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대통령이 됐다. 김건희 여사가 실토했듯, 대통령은커녕 검찰총장도 감지덕지한 입장이었다. 대통령을 꿈꾼 것은 한참 뒤 이야기였다. 전혀 준비되지 않았고, 특히 대통령의 귀를 사로잡고 있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정상적인 궤도에서 일탈한 권력 지향 출세주의자들이다. 굉장히 불행한 대통령이다. 대통령 권력이라는 것이 사실 바늘방석이다. 칼날 위에 앉아 있는 것인데 불행한 정권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행복해야 하는데 압도적 다수가 행복을 느끼지 않고 있다.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정치는 생물이다. 누가 앞을 예측할 수 있겠나.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4년 만에 탄핵당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윤석열 정부의 문제는 이미 민심이 등 돌리고 떠났다는 사실이다. 탄핵은 더이상 금기어가 아니고, 이제 ‘내파(內破)’만 남았다. 동서고금에서 권력은 내부붕괴로 무너진다. 밖에서 밀어붙여서 될 일은 아닌 것 같고, 내부의 균열과 내파가 일어나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22대 국회가 출범한 뒤 국회에서 특검이 발의되면 여당의 필리버스터와 야당 투표에 의한 중단,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다시 국회 표결 부결이라는 ‘무한루프’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는 해소될까.
쉽지 않긴 하다. 어쨌든 핵심은 정치의 실종이었다. 정치는 절멸의 게임이 아니다. 그건 전쟁이다. 정치는 전쟁과 다르다. 전쟁은 상대방을 절멸하는 것이고, 정치라는 건 구동존이(求同存異), 그러니까 내 지지 세력은 넓히고 내 반대편, 나와 다른 사람은 공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은(지난 8월 19일 국무회의에서) 좌파척결을 이야기하며 섬멸을 말했다.
-윤 대통령은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 같다.
섬멸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의견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경쟁이다. 국민의 삶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고, 정권 획득이 정당의 목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모두 정권 획득이 목표인데 이제 두 사람이 무대에 올라온 것이다. 저쪽에서 한 대표가 대선후보가 될 확률이 현재 시점에서는 제일 높고, 이쪽은 이 대표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윤석열·이재명 구도와는 좀 달라졌다. 윤 대통령은 섬멸·좌파척결을 주장하고 이재명 대표로서는 상대가 정적 죽이기를 하는 것에 맞서는, 그런 살벌한 국면의 전환은 기대할 수 있다. 금융투자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 제3자 특검 등을 매개로 대화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국민연금 문제도 그렇다. 총선 직전에 여야가 주장하는 소득대체율이 1%포인트 차이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었는데 못했다. 미래에 관한 주요 의제인데 정치가 작동하지 못하고 발로 차버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새로 선출한 여야 대표가 대화하려는 의지라도 보이니 제한적이나마 정치의 복원을 기대해보는 거다.
-만나서 대화하는 것 자체만 하더라도 의미가 있다는 말로 들린다.
2004년 총선 직후의 일이니 딱 20년 만이다. 그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열린우리당 대표였던 내가 5월 3일 ‘5·3 새정치 협약’이란 걸 맺었다. 물리적인 대치,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하는 ‘무한루프’를 반복하는 걸 막자는 데 합의했다. 협약의 핵심 중 하나가 국가보안법 문제였다. 국가보안법도 절충해서 가자, 전부 아니면 전무가 아닌 가운데 지점을 찾아보자, 물리적 충돌, ‘동물국회’에서 벗어나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4대 개혁 입법 과제로 제시하면서 비타협적 입장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이 어느 정도 받겠다는 선이 있었는데 그때 못 바꾼 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당시 강성 인사들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전면폐지를 내걸고 단식투쟁을 벌였다. 박근혜 대표와 그 협약을 한 뒤 나는 당에서 벗어나 있었다. 통일부 장관을 맡게 되면서 직접 개입할 수 없었다. 아쉬운 대목이다. 사실 불고지죄를 포함해 국가보안법 제7조 등 독소조항을 걷어내고 대체 입법으로 가는 등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만 걷어냈어도 지금은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을 텐데, 그런 교조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 발상이 유감스럽다.
-그게 이번 민주당 전국당원대회의 평가와 연결되는 지점 아닌가. 이재명 대표와 친명 지도부라는 일극 체제가 완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동훈은 당내 친윤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립된 섬, 외인부대라는 평가가 나오고.
일극 체제라… 나도 그 말을 듣고 곱씹어 생각해봤다. 나는 일극이라기보다 초극(超克) 체제가 맞는 것 같다. 어려움을 넘어서 극복한다는 뜻의 초극. 지금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을 보면 어떤 열패감이 있다. 어떻게 이런 정권이 나왔나, 혹은 만들어줬냐 하는. 또 하나는 위기감이다. 어떻게든 이재명을 제거하겠다는 살의다. 실제 칼에 찔리기까지 하지 않았나. 그런 비상한 위기감이다. 정권을 내준 열패감이, 그냥 정권을 내준 것이 아니라 그 정권이 극우 정권이라는 이 경악할 만한 상황과 거기서 느끼는 비상한 위기감, 이 상황을 넘어서야 한다는 그런 감성과 이성의 명령이라고 본다. 감성적이든 이성적이든 이재명 대표는 지금 DJ(김대중)를 능가하는 서사와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이다.
-올해 초 부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그런 것들을 말하는 건가.
DJ의 삶과 집권은 당시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고, 그 결과 우리 정치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그것처럼 말한다면 이재명은 21세기의 DJ다. DJ는 1997년, 20세기 말에 대통령이 됐는데 비교해보면 나는 2007년(정 의원이 출마했던 2007년 대통령선거)에 시대정신을 대표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 그리고 내 삶은 프티 부르주아(중산계급) 같은 삶이라고나 할까. 나도 고생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교육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고, 물론 유신체제에 저항해 끌려간 젊은 날의 고뇌와 고통은 있었지만, 그다음엔 남들이 보기엔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거기서 이름을 날리고 편하게 정치에 입문했다. 대중의 그 엄혹한 삶을 대변하기엔 나에게는 스토리가 부족했던 거다.
-그렇다면 2007년 인스타 팔로워 구매 대선에서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대정신을 대변한 거라고 할 수 있나.
그건 또 별론으로 봐야 한다. 이명박은 시대정신이 아니라 ‘부자 되세요’였다.
-이재명 대표는 시대정신을 대변하나.
이 대표는 DJ를 능가하는 서사와 스토리를 갖고 있다. 이 대표를 도구로 해서 대중은 무엇을 원하나. 대중은 벽을 느낀다. 우리가 신분제 사회가 아닌데 어느덧 돈이 곧 신분인 신분제 사회가 됐다. 그리고 사다리가 치워졌다. 딱딱하게 굳어가는 경화 사회다. 어떻게든 여기에 숨구멍을 내고 사회가 말랑말랑해서 사회적 이동성·유연성을 복원하길 원한다. 이 대표의 삶만큼 그런 시대적 과제를 그 자체가 대변하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열광한다고 본다. 반대편에서는 그래서 죽이려는 것이고. 자기들도 본능적으로 살려둬선 안 된다는 걸 알아서 제거하려 한다. 그런 경쟁력을 갖춘 삶의 내용과 또 본인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하면서 보여줬다. 이재명 정부가 집권하면 이런 길을 가겠다고 미리 예시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저쪽에서도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이재명을 죽이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걸 일극 체제라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 편향되고 편파적인 시각이다. 1기 때 이 대표 지지율이 70%대였는데 85%로 더 늘어난 것은 DJ보다 인스타 팔로워 구매 더 지지받은 것이다. DJ도 85% 지지로 총재가 되진 않았다. 그 이유는 뭘까. 그게 아까 말한 열패감, 위기감 그리고 비상한 시기라는 것이다. 그게 합쳐져 나온 이 대표 체제를 뭐라 불러야 할까를 생각하면 나는 초극 체제가 맞다고 본다.
-아마 그런 이야기를 하면 따라 나오는 것이 사법리스크일 것이다. 선거법 위반·위증 교사 재판 1심 결과가 오는 10월 중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대선을 앞둔 1997년 10월 DJ 600억 비자금 의혹 사건이 불거졌다. 그때 대통령이었던 YS(김영삼)가 명언을 남겼다. 보고를 받고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 것이지 검사 놈들이 뽑는 것이 아니야’라고. 그 한마디를 하자 당시 검찰총장이 수사 유예를 해 대선 뒤로 넘겼다. YS가 정곡을 찌른 것이다. 대선 한 달을 앞두고 수사로 분탕질을 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되나. 그런 점에서 판사나 검사가 대통령을 결정하거나 하게 해서는 안 되는 거다.
-이재명 대표는 정 의원의 팬클럽, ‘정통(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 공동대표로 정치권에 발을 디뎠다.
2002년 대선 당시 ‘후단협’이라는 것이 나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던 노무현을 흔들었다. 나는 부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검은 비닐봉지에 든 돼지저금통을 나눠주며, 또 자갈치 시장을 돌며 ‘노무현, 부탁합니다’ 하고 선거운동을 하고 다녔다. 그때 진심으로 도왔다며 노사모 핵심들이 정통으로 온 것이다. 그 과정에 당시 성남에서 시민운동을 한 이재명 변호사가 참여한 것이다. 2005년쯤으로 기억하는데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당시 이재명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코드가 맞았다. 당시 정통 멤버들 중에서는 법률가이자 시민운동가로 돋보이는 존재였다. 그래서 추대해 대표를 맡게 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와는 동지적 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2007년 대선에 실패해서 사실은 큰 도움을 못 줬다. 그 뒤 2008년 이 대표는 성남시장 출마했다가 떨어졌고, 2010년엔 기적처럼 성남시장이 됐는데 그때는 정세균 대표가 좀 도왔던 것으로 안다.
-이번 당대표, 최고위원 선거 과정에서 정봉주 후보가 초반 1위를 달리다가 막판에 낙선한 건 어떻게 생각하나.
선거 과정에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판단 미스로, 국민 정서와 당의 정서를 읽지 못한 실수로 보인다. 안타깝다. 나에게는 아픈 손가락 같은 사람이다.
-2007년 선거 때 BBK 실소유자 의혹을 제기한 거로 감옥 간 것 때문에?
BBK 문제에 선봉에 섰다가 감옥에 간 건 결국 내가 져야 했던 짐을 정봉주가 지고 갔으니까. 홍성교도소에 여러 번 찾아가긴 했지만 미안하다. 빚이 있는 것이다. 지난 총선 때 강북 공천장 반납하게 된 것도 정말 안타까웠다. 정봉주는 2004년에 초선하고, 2007년 일로 감옥 간 뒤 거의 18년을 정치 낭인으로 보냈다. <나꼼수>도 하면서 이름은 냈지만, 여의도 국회에서는 내쫓긴 상태였다. 이번에도 처음엔 1등 하는 것 같더니 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걸 보고 인간적으로 굉장히 안타까웠다.
-정봉주 후보는 막판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명팔이’, 이재명을 팔아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나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건 실수 맞다. 당원과 국민을 대변한다고 나섰다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걸 짚어야 했다. 아까 이야기한 초극 체제에서 당원들은 이 대표를 중심으로 견고하게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그다음에 정권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의지가 충만하고 불타고 있는데 그건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의제설정 포인트를 잘못 잡은 실수다. 내가 옆에 있었으면 인스타 팔로워 구매 조언을 해줬을 텐데.
-정봉주를 정 의원이 도왔다는 정치권 소문이 있었다.
나도 안다. 정봉주를 싫어하고, 나도 싫어하는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실제로 정봉주를 돕거나 하진 않았나.
심정적으로만 도왔다. 이 대표가 또 김민석 최고위원을 원했으니 민주당 당원들은 정봉주도 찍고 김민석도 찍었을 것이다.
-민주당이 포퓰리즘 독재 정당으로 변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과정을 문제 삼기도 한다.
팬덤은 한국 정치의 특징이다. 2017년 민주당에서 돈을 내는 당원이 20만명이었는데 이제 125만명이다. 100만명이 늘었다. 7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촛불혁명이 있었다. 1700만 촛불이 당으로 들어와 정치적 효능감을 맛본 것이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자는 열망이 민주당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정당으로 들어와 정당의 의사결정에 참여한 것이다. 거기서 파생된 것이 팬덤인데 그 출발은 ‘노사모’다.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뭐든지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지만 당원과 국민은 관객이 아니다. 검찰권도 주인은 국민인데 지금 검사들이 자기 것인 양하고 있지 않나. 나는 그게 정동영 정치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당원 주권주의를 주장하는 분들은 정 의원이 서두에 언급한 협치에 대해 적대적인 발언을 많이 한다. 협치를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수박이다, 이런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부작용으로 본다. 그건 옳지 않다. 왜냐면 정치의 본령은 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하는 대화다. 대화로 하는 것이 협상이다. 100%는 없다. 나도 양보하고 상대방도 입장을 뒤로 물려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이 정치의 바람직한 모습이고, 우리가 가야 할 합의제 민주주의의 길이다. 대치와 대결, 반목과 혐오가 아니라 상호존중과 타협의 정치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이재명·한동훈 신임대표가 그런 대화나 협의, 협치의 모습을 보일까.
한동훈 대표는 정치 경험이 없다. 정치 멘토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학습해서 배우는 것과 경험으로 배우는 건 다르다. 나도 쭉 경험했지만 정치에서 성공이나 실패의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다. 소크라테스가 한 유명한 말인데 ‘내가 모른다는 것은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게 참 ‘지(智)’다. 한동훈에게 그게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재명 대표는 협상을 잘할 것 같은가.
이 대표는 실용주의자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해법에 늘 초점을 두는 정치가라서 주고받기가 가능한 정치를 한다고 본다. 대표적인 예가 남한산성 계곡에서 수천 수백 불법 노점상을 정리해낸 일이다. 아무도 해낼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그걸 일방적으로 경찰 동원해서 밀어낸 것이 아니지 않나.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을 받아내는, 그것도 하나의 협치 모델 아니었나 싶다. 결과적으로 큰 불상사나 불협화음 없이 그 문제를 해결해낸 것을 이미 봤지 않나.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될까.
본인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대통령이 됐다. 김건희 여사가 실토했듯, 대통령은커녕 검찰총장도 감지덕지한 입장이었다. 대통령을 꿈꾼 것은 한참 뒤 이야기였다. 전혀 준비되지 않았고, 특히 대통령의 귀를 사로잡고 있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정상적인 궤도에서 일탈한 권력 지향 출세주의자들이다. 굉장히 불행한 대통령이다. 대통령 권력이라는 것이 사실 바늘방석이다. 칼날 위에 앉아 있는 것인데 불행한 정권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행복해야 하는데 압도적 다수가 행복을 느끼지 않고 있다.
-임기를 정상적으로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정치는 생물이다. 누가 앞을 예측할 수 있겠나.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4년 만에 탄핵당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윤석열 정부의 문제는 이미 민심이 등 돌리고 떠났다는 사실이다. 탄핵은 더이상 금기어가 아니고, 이제 ‘내파(內破)’만 남았다. 동서고금에서 권력은 내부붕괴로 무너진다. 밖에서 밀어붙여서 될 일은 아닌 것 같고, 내부의 균열과 내파가 일어나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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